자꾸만 생기는 물음표들

 

 어제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힘들어서 혼났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 같지만... 그래서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힘들고 자꾸만 무기력해지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전혀 가난하지도 않고 멀쩡히 대학도 다니고 있고 딱히 나쁜 일도 없는데 왜 이럴까? 일상이 무료하고 미래가 기대되지 않는 인생이 지겨워서 그만 살고 싶은 건가? 정말 그런 거라면 지금 이렇게 힘든 이유가 설명이 되긴 하네. 그런 건 털어 놓을 데도 털어 놓을 수도 털어 놓을 것도 없는 거니까. 정말 딱히 콕 집어서 문제 삼을 만한 게 없는 거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만 더 힘들지.  

 어제도 결국 미뤄둔 과제 때문에 D를 못 만나서 기분이 안 좋아졌다. 미루게 된 것도 자의로 그런 게 아니라 그 전까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거라서 더 괴로웠다. 현실아 왜 자꾸 내 행복에 훼방을 놓니? 그렇게 과제를 겨우 끝내고 미안한 마음으로 다음 약속을 잡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몇 시간째 오지 않던 답장이 늦은 밤이 돼서야 도착했다. 그 아이도 오늘 좀 힘든 하루였다고, 하지만 곧 나를 볼 생각에 행복하다고 말했다. D가 힘든 이유는 나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라서 조금 슬퍼졌는데 한편으론 나로 인해 행복해졌다고 말해주다니,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예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세상이 더 싫어졌다. 나에겐 별로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너인데... 

 오늘은 또다시 모든 게 나쁘게만 느껴졌다. 예쁘게 차려 입고 J를 만나 맛있는 것도 먹고 내가 좋아하는 고소한 커피도 마셨지만 그냥... 별 생각 없이 목구멍에 밀어넣느라 바빴던 것 같다. 테라로사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도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딱 1년 전 가로수길 어느 식당 화장실에서 본 내 얼굴이랑은 달라도 너무 다르게 보였다. 내면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라는 사실마저 싫다 싫어. 여행 계획 짜는 것도 그렇고 계속 밀어 닥치는 과제도 그렇고 해야 하는 공부도 그렇고 나에게는 너무 버겁기만 하다. 솔직히 말하면 그 여행이라는 것도 그리 내키지 않거든. 차라리 혼자 떠나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정말 요즘은 다 포기하고 싶다. 근데 울지는 않는 걸 보니 요즘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도대체 어떤 건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서 미치겠다. 



 잠을 설치는 날들은 이제 다 끝난 것 같다. 2주가 넘도록 하루에 네 시간씩 자보니까 알겠더라. 잘 자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예민한 사람인지. 지옥 같은 나날들이었다. 나는 평생 둔감하고 단순한 사람들을 부러워 하면서 살 것이라고 한탄하며 하늘을 저주했다. 나에게 이런 나쁜 걸 물려준 아빠도 조금 원망했다. 그렇게 고생을 하다 정상적인 수면 패턴에 가까워지게 된 것은 바로 D가 준 약을 먹은 이후부터였다. 총 두 종류였는데 자그맣게 반 개씩 쪼개져 있는 아주 소량의 약이었다. 먹고 나서도 그 약의 힘이 발휘된 건지 아니면 위약 효과인 건지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때의 내가 뭔가에 그저 의지하고 싶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 콩알보다도 작은 것들을 입 안에 털어넣자마자 마음이 편안해졌으니까. 

 며칠이 지난 오늘, 이제는 비어버린 약 봉지를 보면서 그날을 생각했다. 그 약을 받은 날, 개찰구 앞에서 헤어지기 직전에 또 한번 고마움을 전하는 나에게 D는 자신의 집에 약쟁이가 둘이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가볍게 넘기듯 지나쳤던 그 웃음을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곱씹어보니 왠지 쓴맛이 나는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안 좋아졌었다. 나는 아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만큼은 늘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왜 항상 그러지 못하는 걸까...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다가 오늘 갑자기 무너진 이유는 뭘까? 아니, 지금까지 나는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고 정말 괜찮았거든. 근데 왜? 날이 추워져서? 아무리 여며도 내 속을 파고드는 찬 바람 때문에? 역시 나는 겨울에 약한 걸까?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그간 나는 결코 괜찮다고 말할 수 없는 상태였던 걸까? 그래 그것도 아예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내 몸이 추운 건지 마음이 쓸쓸한 건지 구분할 수가 없는 걸. 



 답을 모르는 생각과 밑도 끝도 없는 감정을 배설해내기엔 역시 여기 만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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