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반려견 또순이가 죽었다


언제나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쓴다. 재작년과 작년의 일기를 읽은 후에 오늘의 기록을 남기곤 한다.


2년 전 오늘은 '또순이'가 죽은 날이다. 강아지 또순이는 그 뿌리가 프랑스다. 어쩌다가 그 선조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미국에서 태어난 또순이가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그때 나는 노모와 병중의 아내를 보내고 혼자 있었다. 미국에 사는 셋째 딸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데리고 왔었다.

미국에 사는 동안에는 내 딸과 같은 방에서 지냈기 때문에 우리 집에 와서도 2층의 내 방에 머물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럴 수가 없어 계단 현관 옆에 머물 자리를 장만해 주었다. 그래도 또순이는 2층에 있는 내가 그리워 언제나 계단 아래서 위쪽만 바라보곤 했다. 내 딸의 설명은 비숑(Bichon) 종류 강아지인데 세상에서 주인을 가장 좋아하고 따른다는 것이다. 다 자란 후에도 중간 정도의 고양이 체중밖에 되지 못하는 귀염둥이다.

내가 또순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뒷산을 산책할 때와 앞뜰 잔디밭에서 놀아주는 동안이다. 또순이는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뒷산을 걸을 때는 수십 번씩 뒤따라오는 나를 쳐다본다. 잔디 위에서는 내 환심을 사려고 갖은 아양을 부린다. 그러다가 품에 안아주면 내 눈을 쳐다보다가는 반쯤 눈을 감는다. 그 표정이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은 없다'는 듯싶었다. 나도 '아내 다음에는 네가 나를 가장 좋아하지…'라고 중얼거리곤 했다.

10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또순이가 나보다 더 빨리 늙기 시작했다. 2년 전쯤부터는 노화 현상이 뚜렷했다. 나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잔디 위를 뛰어 돌다가도 힘들어서 안 되겠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보곤 했다. 나도 '나보다 네가 더 빨리 늙어서 어떻게 하지…'라고 안아주곤 했다.

지방에서 손님이 왔다. 우리는 습관대로 또순이와 같이 손님 차로 드라이브를 했다. 내 품에 안겨서 내 얼굴과 창 밖을 번갈아 내다보곤 했다. 산책길에서는 즐거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날 보고 또 보곤 했다. 그것이 또순이의 마지막 행복이었다. 이틀 후에 또순이는 모두가 잠든 밤에 계단 밑 이층이 보이는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또순이는 내 곁을 떠났다.

나는 또순이와 같이 거닐던 산길을 걷고 있었다. 또순이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앞을 바라보았더니 또순이가 벚나무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너 여기 있었니?'라면서 뛰어갔다. 두 팔을 벌렸다. 또순이가 뛰어와 안기지를 못했다. 내가 끌어안아 주었다. '내가 보고 싶었지? 왜 서서 기다리기만 했어?' 하면서 살펴보았다. 또순이는 생전과 같이 내 얼굴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주인님 품 안이어서 편안해요'라는 듯이.

꿈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나도 사모해 온 분의 품 안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어야 할 텐데'라고.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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